2016 회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도전의 시작

2016년은 드디어 저희 회사가 회사다운 회사로 출발한 시기입니다. 대표님은 1인기업으로써 2년만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되셨죠. 그리고 평생 꿈이였던 람보르기니 구매후 인생의 회의감을 느끼며, 지내시다가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새로운 꿈을 찾으셨고, 그 꿈을 이루기위해 그렇게 다시 본가인 청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 당시 많은사람들이 대표님께서 지금 시국에(그당시에는 블로그 저품으로 전국적으로 마케터들에게 매우 큰 사건이였던 시기였습니다) 회사를 만들고자하는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1년도 유지하기 힘들거라고 하기도 했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애드파인더는 매우 승승장구하였고, 불과 3년도 안되어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에 종합광고기획시행사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문들은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상민은 망했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에게 연락해오던 그 많던 사람들의 연락이 한순간에 끊키게되는 놀라운 경험도 하시게되죠.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지고 잠수타고 혹은 자기네들끼리 모여 팀을 만들기도 하고, 아니면 누구는 공무원준비를 하거나 취업준비를 하거나 창업준비를하는둥 하모니그룹들은 그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주까지 짐을 옮겨주었던, 마지막으로 남았던 하모니그룹 멤버들까지 대표님을 결과적으로 전부 떠나게되었습니다. 실제로 2015년말, 2016년에 벌어진 최적화대란은 하모니그룹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광고회사를 만든다는거 자체도 크게 와닿지 않았을것이고, 만든다한들 망하거나, 안망해도 잘되긴 힘들거라는 확신을 하게 했죠. 하지만 대표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안된다고하고, 남들이 자기같으면 안저런다고하고, 남들이 하는 수많은 안좋은말들에 전혀 미동하지 않고, 밤이고 낮이고, 언제나 생각하고 고민하며, 펼쳐진 다양한 문제들을 계속 해결해나가셨습니다. 그리고 2016년 1월이 중순도 안지났을 무렵, 대표님은, 대표님의 원룸건물 4층에 주인세대를 사무실로 만들어, 모든 셋팅을 준비합니다. 이것이 고작 2016년 한달도 안되어 벌어진 일들이였습니다. 하지만 건물까지 구매하고 나니, 현금이 없었던 대표님은, 컴퓨터나 가구구매등을 위해 현금이 필요하였습니다. 대표님이 선택하실건 두가지였습니다. 람보르기니를 파느냐 아니면 돈을 버느냐, 대표님은 람보르기니를 팔기는 싫으셨고, 그래서 돈을 빨리 벌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돈을 버시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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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은 급전을 벌기위해 가장 빠른것은 기존에 전문가 인맥들을 활용하여, 단타 및 장타등을 통한 CPA로 하루에 몇시간만 일하고 백만원이 넘는 금액을 혼자서 다시 그렇게 계속 창출해나가셨습니다. 서울에 계실때, 이 업계에서 거의 탑수준의 실력과 인지도를 겸비하셨던 대표님은 그냥 혼자서 뚝딱뚝딱 약 한달 좀 넘는 기간만에 월 억단위에 가까운 수익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하모니그룹의 제휴마케팅 계정들을 통해 수익을 더욱 확장시키고, CPA, CPS, CPI 등을 진행하고, 업체들과의 자체 CPS계약체결 그리고 가끔은 강의와 컨설팅도 지속하시면서 필요한 초기자본을 더욱 빠르게 만들어내셨습니다. 그리고 불과 두달만에 모든것이 완성되었죠. 당연히 람보르기니는 팔지 않으셨습니다. 돈을 그냥 더 버셔서 물품들을 다 구매하신것이죠. 그리고 그러한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대표님을 또 따라하려했지만 대표님은 실제로 거의 압도적이셨습니다. 엄청난 아이디수와 각 계정수 그리고 그것을 외부 협업자들을 빠르게 모아 진행시키는등 절대 대표님의 깊이를 흉내낼순 없었죠. 그리고 매우 빠르게 모든건 결과로 나타났고, 2016년 초반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인테리어등 모든걸 다 처리하게 됩니다.

한달에 혼자서 거의 억가까운 수익을 올리시는 쾌거를 보이시며, 애드파인더 사무실 물품과 알바생을 뽑고 난 이후에도 조금씩 계속 수익을 창출하셨고, 처음에 알바 5명으로 시작하여, 알바 한명당 수익률이 최소 600만원이 넘게 되며, 매우 성공적인 출발을 시작합니다. 대표님의 경영마인드는 언제나 지속가능한 사업을 위한 안정적인 운영이셨고, 이는 안정적이여도 너무 안정적인 출발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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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모니그룹은 점점 더욱더 역사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애드파인더는 처음에는 광고주가 당연히 그렇게 많은건 아니였습니다. 그렇기에 대표님은 스스로 수익을 만들어내거나 창출하기 시작하셨고, 이는 다양한 제휴마케팅들이나 체험단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네이버카페등 수익 다각화를 통해 초반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훗날 애드파인더의 명성과 시스템 그리고 문화등 모든것을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는 하룹의 부대표님께서 출현하십니다. 부대표님은 SK건설퇴사후 유니프주식회사를 설립하시고 운영을 하시다가, 2015년 8월에 하모니그룹에 합류하셔서 애드파인더를 담당하게 되셨는데요, 애드파인더가 메인으로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영향은 역시 부대표님이셨습니다. 2015년 하룹스토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표님의 1인기업시절 방식은, 대표님의 어떠한 서비스나 계열을 만들고, 그곳에 적절한 사람을 배치하여 그렇게 수익을 늘려가는 방식이셨습니다. 2015년 말에는 애드파인더쪽이 가장 우수한 실적과 부대표님 혼자서 100명 가까이되는 광고주분들을 상대하며, 애드파인더에 매출을 계속 엄청나게 높여가셨는데, 다양한 이유로 대표님은 애드파인더쪽을 더욱 밀기 시작하셨죠. 그리고 2016년은 이와같이, 아예 애드파인더로 "회사" 구축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리고 알바생들이 하나둘씩 뽑히기 시작하죠. 그렇게 알바생은 8명까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학회장출신에 해병대전우회 회장출신등에 경험을 바탕으로 부대표님은 이들을 매우 잘 이끌어가셨죠.

그렇게 하모니그룹은 점점 더욱더 역사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애드파인더는 처음에는 광고주가 당연히 그렇게 많은건 아니였습니다. 그렇기에 대표님은 스스로 수익을 만들어내거나 창출하기 시작하셨고, 이는 다양한 제휴마케팅들이나 체험단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네이버카페등 수익 다각화를 통해 초반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훗날 애드파인더의 명성과 시스템 그리고 문화등 모든것을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는 하룹의 부대표님께서 출현하십니다. 부대표님은 SK건설퇴사후 유니프주식회사를 설립하시고 운영을 하시다가, 2015년 8월에 하모니그룹에 합류하셔서 애드파인더를 담당하게 되셨는데요, 애드파인더가 메인으로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영향은 역시 부대표님이셨습니다. 2015년 하룹스토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표님의 1인기업시절 방식은, 대표님의 어떠한 서비스나 계열을 만들고, 그곳에 적절한 사람을 배치하여 그렇게 수익을 늘려가는 방식이셨습니다. 2015년 말에는 애드파인더쪽이 가장 우수한 실적과 부대표님 혼자서 100명 가까이되는 광고주분들을 상대하며, 애드파인더에 매출을 계속 엄청나게 높여가셨는데, 다양한 이유로 대표님은 애드파인더쪽을 더욱 밀기 시작하셨죠. 그리고 2016년은 이와같이, 아예 애드파인더로 "회사" 구축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리고 알바생들이 하나둘씩 뽑히기 시작하죠. 그렇게 알바생은 8명까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학회장출신에 해병대전우회 회장출신등에 경험을 바탕으로 부대표님은 이들을 매우 잘 이끌어가셨죠.

그야말로 애드파인더는 승승장구 그 자체였습니다, 매주가 혁신이였고, 매월이 놀라움에 연속이였죠. 애드파인더가 시장에 공개되고 나서, 이전에 하모니그룹 멤버들에게도 연락이 다시 오게됩니다. 하지만 이때 사람의 간사함을 용납할 수 없었던 대표님은, 2015년말에 어려워졌다고 했을때 등을 돌린 사람들을 받아주지 않으셨고, 위로차 대표님을 뵈러온 사람이나 힘내라는 안부전화나 카톡이라도 보내줬던 이들만을 대상으로만 협업팀을 구축하셨고, 그분들을 한분 한분 만나면서 새로운 수익원에 비밀과 방식에 대해서 알려주시기위해 다시 전국을 얼마동안 또 순회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대표님은 애드파인더 공개후 2개월만에 아우디를 뽑으셨죠. 기존에 남은 최적화들을 통한 문의는 그야말로 쇄도했습니다. 하모니그룹 시절에 모아놓은 최적화 수량이 넘쳐 흘렀기에, 사실 블로그대란 시기라해도 애드파인더는 오히려 그때가 기회였습니다. 최적화가 엑셀로 약 800여개가 있었으니깐요, 이것을 그당시 블로그 가치였던 500만원으로 환산하면, 애드파인더는 이것만해도 시작부터 40억이상에 가치를 가지고 시작한것과 같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2017년말에 30억 이상에 예상치 못한 엄청 막대한 손해를 야기하게되죠. 그것은 하룹 스토리 2017년에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으십니다.

애드파인더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주시기 시작합니다. 청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 회장님이나 기자님 전문가 각 분야별 사업가등등 정말 많은분들께서 애드파인더를 방문해주시게되죠. 그리고 동시에 대표님과 부대표님은 전국을 돌며 기업회장님들이나 전문가들이나 제휴협력체등을 직접 만나시며, 애드파인더 초창기 시스템을 탄탄히 구축해가셨습니다. 그렇게 매출은 나날이 증가하게 되고, 회사가 돈을 잘버니 알바생들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끝나면 항상 같이 밥을 먹거나, 호수공원을 놀러가거나, 회사에서 게임대회를 열거나, 체육대회를 열거나 하기도 했었죠. 이때만해도 직원들은 대표님과 부대표님에게 직급에 대한 호칭보다는 "형", "오빠"라고 더 많이 부르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회사를 만들어가곤 있지만, 아직 회사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것들이 많았던 그런 시기였죠.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봐도 우리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울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애드파인더에서는 제휴마케팅, CPA, CPS, 모바일광고, 블로그광고, 카페광고,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앱설치리뷰등에 매우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였습니다. 여기에 임시 하모니그룹 준비팀을 만들어서, 애드파인더에서는 하모니그룹의 부활을 준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팀원들은 카카오채널과 네이버카페 페이스북페이지 밴드등 수많은곳에서 유용한 채널들을 개설하고 그것을 계속 키워가며, 애드파인더는 이때부터도 미래먹거리 준비를 언제나 미리 준비하곤 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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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은 그러면서 또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셨습니다. 기존에 블로그관리들의 특성이였던 서이추와 스크랩 및 트래픽을 부어주는 방식과 그저 상위노출 건바이나 노출 월보장방식에 문제점을 지적하셨죠. 그리고 업체가 롱런하기위해서는 진정한 기획과 함께 꾸준한 운영 그리고 이를 통한 지속적인 노출이 오히려 광고비적으로 봤을때 훨씬 효율적이다 라는 계산을 통해, 시중에 현존하는 블로그관리가 나오게 됩니다. 또한 카페쪽은 그당시만해도 회원수 넣어주기, 무의미한 게시물수 채우기등에 관리가 주를 이뤘던 시기였는데, 대표님은 이 역시도 똑같이 가기를 거부하셨습니다. 회원수를 쏟아붓는것은 카페가 그만큼 빨리 죽는것이고, 무의미한 게시물수 채우기는 카페회원으로 하여금 구매전환률을 낮추는 주된 원인이라 하셨죠. 그리하여 기획과 디자인 그리고 프로그램 사용이 없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차원에 카페관리 서비스를 선보이십니다. 그리고 현재는 사라졌지만 앱광고, 페이스북페이지관리, 지식관리서비스등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것을 추구하셨습니다. 그러자 애드파인더는 경쟁업체들에게도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바일광고부터 블로그관리와 카페관리등 대표님이 만들어낸 서비스들은 우후죽순 다른 광고업체에서 모방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모방이되어지고, 그들이 애드파인더에 서비스를 베껴서 수익창출이 원활히 시작할때 대표님은 또 다른 서비스를 내놓거나, 아니면 해당 서비스를 접고, 또 전혀 다른 서비스를 출범하는 방식으로 경쟁자들을 크게 웃돌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때는 회사를 시작한지 1년도 안되었지만 대표님은 발표때나 회의때나 입버릇처럼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던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회사를 만들어보니, 회사를 키우기는 정말 쉽다. 왜냐면 대부분에 회사들은 잘되는곳을 따라하기 바쁘더라. 그리고 난 확신했다. 그것이 우리에겐 수많은 회사들을 단숨에 이겨버릴수있는 기회다"

그리고 대표님은 언제나 더욱 놀라운 서비스를 만들거나 혹은 기존 서비스를 계속 업데이트하셨고, 부대표님은 대표님이 만든 서비스를 직접 팔았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을 관리하였죠. 그리고 대표님은 그때 또 더욱 강력한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애드파인더가 돌아가는 방식은 이러한 방식이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부대표님과 직원들이 열심히 서비스를 판매하고 제공하다보면 어느덧 대표님이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업데이트를 하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더욱 혁신적인 서비스를 발표하시곤 했습니다. 애드파인더에게 2016년 상반기는 그야말로 시작부터 달랐던 출발이였습니다. 그리고 애드파인더 1호점을 오픈한지 6개월도 안되서, 애드파인더는 2호점 사무실을 내었습니다. 정말 매월 성장의 성장이였던 시기였죠. 정신좀 차리고 숨좀 돌릴라하면 대표님은 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부대표님 역시 모든걸 다 체계적으로 만들고 모든 판을 다 그 이상으로 실현시켜나가셨죠.

대표님은 회사를 만들고자 꿈을 꾸시고, 6개월만에 애드파인더 2호점을 오픈하셨습니다. 알바생들은 직원으로 승격하기도 하였죠. 사내 분위기는 가족 또는 대학캠퍼스와도 같았습니다. 언제나 시끄럽고, 언제나 장난이고, 언제나 웃음이 가득하였던 시기였죠. 하지만 이때만해도 복지는 매우 형편없었습니다. 대표님은 2017년까지 퇴직금의 개념이나, 연차, 휴가 개념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1인기업으로만 돈을 벌어왔기에, 근로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했었던 시기였죠. 같이 놀다가 밤을 새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도하고, 청주에 가볼만한곳은 직원들과 언제나 함께 다니며, 대표님과 부대표님에게 직원들은 가족과도 같았습니다. 모두 한명 한명이 소중했었고, 또 그들을 위해서 대표님과 부대표님은 목숨을 걸고 이 회사를 계속 키우기로 더욱 굳은 마음을 먹게 되기도 하였죠.

2016년 하반기에는 직원중에 결혼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애드파인더는 규모확장을 위해 계속 여러방면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대표님은 애드파인더에 더욱 많은것을 투자하기위하여 람보르기니를 파시고, 포르쉐 파나메라로 차를 바꾸셨죠. 그리고 남은 금액은 고스란히 전부 애드파인더 성장을 위해 투자되었습니다. 사실상 회사를 만들고나서는 오히려 개인때보다 가져가는것이 매우 줄었던 대표님은, 회사 존속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계속 회사에 투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인해 훗날 이 회사는 매우 탄탄해지게 되죠. 그리고 외부 활동 역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입니다. 매우 잦은 주기로 외부 사람들과 미팅을 하고, 만남을 지속하심에, 애드파인더는 이때부터도 제휴업체들이 매우 많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과 첫 워크샵을 갔습니다. 이때만해도 직원들은 불과 10명이였죠. 그리고 하반기에는 계속 규모가 불면서 25명까지 직원이 늘어났습니다. 물론 이때만해도 복지는 지금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아직 1년도 안된 회사이고, 이때만해도 정식팀이라던지 정식직급체계라던지 이런 모든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사내 복지관리팀이나 인사팀 그리고 외부 법무팀이라던지 세무팀 노무팀같은건 상상도 못했을 시기였었죠. 그냥 평균 연령 20대 초중반인 애들이 악착같이 한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급여도 형편없었고, 직원들에 대우도 형편없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악착같이 올라갔어야 했기에, 이시기만해도 대표님은 직원들에게 화를 잘 내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분위기가 좋았을때도 많았지만, 화를 낼때는 거침없이 내셨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대표님은 결과를 항상 내니 같이 일하고 싶긴하지만, 화가 나면 물불을 안가리시고, 행동하시니, 사실 직원들이 대표님과 함께 하기 싫으면서도 함께 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시기였기도 했습니다. 주로 대표님은 화내는 포인트는 실수였었고, 누가 실수를 한 날은 화장실 가는것도 눈치보일만큼 무서웠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에 부대표님 역시 해병대전우회 회장과 학생회장을 한지 얼마 안된 시기라, 이 당시 애드파인더의 군기는 제일 최강이였던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대표님도 특공대 출신으로 이때는 정말 매우 혈기왕성하셨던 시기셨죠.

하룹2016, To be cou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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